대한민국 e스포츠 최초 금메달리스트의 탄생까지 - 김관우 인터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최초 금메달리스트가 이야기하는 대전 격투 게임, 항저우 아시안 게임,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지난 2023년 9월 28일, 대한민국 e스포츠 역사,
그리고 대전 격투 게임 역사에 새로운 역사가 새겨졌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e스포츠 부문 스트리트 파이터 V 챔피언 에디션에 참가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김관우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 것. 이는 e스포츠가 아시안 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탄생한 최초의 e스포츠 부문 금메달이다.

김관우 선수는 1세대 대전 격투 게임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지금까지 플레이한 대전 격투 게임,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뒷이야기, 금메달 획득 후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대전 격투 게임과의 만남

IGN: 우선 김관우 선수의 게임사를 이야기해보죠.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즐기셨나요?

김관우 : 네. 게임을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오락실(현 청소년 게임장)에 다니기 전에는 문방구 앞에 있는 작은 게임기에 2~30원 넣고 게임을 즐기고는 했으니까요. 오락실의 게임 외에도 작은 액정 미니 게임기 같은 것도 좋아 좋아했습니다. 내 손으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좋았어요.

대전 격투 게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스트리트 파이터 I은 어린 시절에 잠깐 구경하긴 했지만, 당시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 스트리트 파이터 II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플레이하면서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나름 실력이 오르는 느낌이 즐겁게 느껴져 그대로 빠져들었습니다.

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한 성남 스피릿제로 소속 김관우 선수(44). 성남 스피릿제로는 성남산업진흥원의 지원 사업인 ‘e스포츠 게임단 운영’ 구단으로써, 지난 6월 7일 업무 협약을 맺고 e스포츠 저변 확대 및 e스포츠 도시 성남으로서의 인식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금 기억하는 당시의 오락실 풍경은?

본격적으로 오락실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인데, 스트리트 파이터 II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SNK에서 개발된 게임은 아직 더 킹 오브 파이터즈(KOF)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용호의 권, 아랑전설, 사무라이 쇼다운 등이 인기를 얻었죠. 그런 게임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점점 대전 격투 게임에 몰두했습니다. 이 장르의 매력은 아무래도 사람과의 대전인 만큼, 플레이중 동네 라이벌, 아는 형들, 친구들이 생기면서 활동반경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그러다가 KOF를 접하면서 대전 격투 게임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KOF를 현역으로 즐긴 사람에게는 ‘배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관우 선수도 배틀 팀에서 활동하셨죠?

배틀의 경우 저는 사실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라, 배틀의 역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커뮤니티에서 KOF ‛96이 나왔을 때 활동했던 사람들을 1세대 배틀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때가 시작이 아닐까 싶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PC 통신 나우누리에서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배틀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꽤나 관심이 생겨 당시 동네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형 동생과 함께 H. I.라는 팀을 만들어 배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대략 1997년의 1~2월 경으로 기억하네요. 시작하자마자 활약한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에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거든요. 하지만 기존의 팀과도 티격태격하며 경쟁하게 되었고, 새로운 팀이 그 정도로 활약한다는 것 자체가 꽤 화제가 될 만한 일이었기에 다른 팀의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후 KOF ‛97~‛98에 걸쳐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김관우 선수가 본격적으로 대전 격투 게임을 파고들기 시작한 계기가 된 KOF 시리즈. 현역 배틀인 시절의 김관우 선수는 비주류 캐릭터 장인으로 유명했으며, 지금도 최강 캐릭터로 분류되는 캐릭터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당시에는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셨나요?

많은 캐릭터를 사용했었는데, KOF ‛97은 노멀 크리스, 노멀 야시로, 블루 마리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한국에서의 KOF 시리즈 인기는 KOF ‛97이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맞습니다. KOF ‛97부터 사람들도 많아졌다는 것이 느껴졌고, 오프라인 대회를 개최해도 사람이 많이 모였어요. 지금처럼 체계적인 대회가 아니라, PC 통신의 게시판에 며칠 어디서 대회 여니까 모이세요~ 하면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렸습니다. 지방에서도 사람이 올 정도로 열심이었죠.

소울칼리버 고수로도 유명하십니다. 2D와 3D를 양립은 어떻게?

3D 대전 격투 게임이라고 플레이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배틀을 할 정도로 파고든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어요.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의 경우는 2~3편을 상당히 많이 즐겼습니다. 철권은 한국에서의 인기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손이 가지 않는 편이었는데, 소울칼리버가 나와 이쪽을 해보니 상당히 재미있어서 꽤 파고들었습니다. 기존의 3D 대전 격투 게임에 비해 필드를 정말 종횡무진 누비는 무빙이 가능했고, 움직임이 시원시원해서 좋았습니다.

소울칼리버로 대회에서 우승도 하고 그러셨죠.

많이 했었죠.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스트리트 파이터로 초청받아 방문한 호주의 대회에서 소울칼리버 V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어요. 좋은 추억이 많이 있는 게임입니다. 소울칼리버 III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지만, 다른 작품은 꽤나 열심히 했습니다.

김관우 선수가 KOF 시리즈만큼이나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소울칼리버 시리즈. 1998년 아케이드로 출시되자마자 화려한 그래픽과 간단한 조작, 독특한 전투 시스템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1년 뒤 드림캐스트로 출시된 가정용 버전은 많은 미디어에게 역대 최고의 가정용 대전 격투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시기에 군에 입대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대를 2000년도 5월에 가서 2002년의 가을쯤에 제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간에 복무기간이 좀 단축되었기에 정확한 전역일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2002년 월드컵은 군대에서 보셨겠군요.

그렇죠. 심지어 제가 전경 출신이거든요. 당시 대구에서 한국 대 터키의 3위 결정전이 진행되었는데, 제가 당시 경비로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끝나고 제대를 하셨을 텐데, 당시는 대전 격투 게임 붐이 침체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오락실이 많이 줄어들긴 했죠. 그래도 아직은 어느 정도 남아있던 시기였고,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플레이했습니다. 당시 소울칼리버 II가 나와서 이를 플레이하기 위해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있었던 화성침공이라는 오락실에 많이 들렸고요, 약수역 지티월드나 이수역 주변의 오락실도 많이 다녔네요. KOF 2001, 2002 같은 게임도 즐겼습니다. KOF 2001은 문제가 많은 게임이라 오래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웃음)

스트리트 파이터 IV

이번엔 김관우 선수가 스트리트 파이터의 고수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스트리트 파이터 IV에 대해 이야기 해보죠. 스트리트 파이터 IV는 언제부터 플레이하셨나요? 오락실부터?

아니오. 제대로 플레이하기 시작한 것은 가정용으로 이식된 이후입니다. Xbox 360판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게임 제작에 참고할 만한 시스템 등을 분석하기 위해 회사로 주문해서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랭크 매치가 된다고 해서 플레이해보니, 이전까지 플레이했던 온라인 매치 대응의 대전 격투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게 환경이 좋았어요. 물론 지금의 환경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당시 이 정도의 온라인 환경을 갖춘 대전 격투 게임이 없었거든요. 이 수준이라면 꽤 재미있게 온라인 대전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여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도의 온라인 대전을 집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같은 환경이었죠. 다만 당시 제가 집에 Xbox 360이 없었어요. 그래서 퇴근시간이 되면 Xbox 360 본체와 게임을 집으로 들고 가서 플레이하고, 출근할 때 다시 가져다놓기를 반복했습니다.

초기 Xbox 360이면 무게가 상당했겠네요. 벽돌 크기의 어댑터도 있는데.

어댑터 정말 컸죠. 다행히도 회사와 집이 가까웠습니다. (웃음)

당시로서는 최고의 온라인 대전 환경을 제공해, 한 번 사그라들었던 대전 격투 게임의 붐을 다시 지핀 스트리트 파이터 IV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셨나요?

처음에는 로즈를 사용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알파) 시리즈를 플레이하던 기억이 있어 로즈가 끌리더군요.

초기 로즈면 소울 새틀라이트도 없어서 성능이 애매했을 텐데요.

강함보다는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캐릭터가 우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김관우 선수는 C.바이퍼 장인으로 유명합니다.

실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집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IV를 로즈로 열심히 플레이하다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활동하면서 오락실에 모여 플레이할 기회가 생겼는데, 동전을 넣고 셀렉트 화면을 보니 로즈가 없는 겁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V의 아케이드 버전(위)과 가정용 버전(아래)의 셀렉트 화면. 아케이드 버전은 기본 16명에 숨겨진 캐릭터인 고우키를 추가해 17명이 전부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IV의 로즈는 가정용 이식판의 추가 캐릭터였죠.

그래서 아케이드 판에서도 할 수 있는 캐릭터를 하나 선택해야겠다 생각했고, 이때 고른 캐릭터가 C.바이퍼였습니다.

C.바이퍼를 할 때 승률은 어느 정도였나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회에 참가하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는 했으니 나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웃음)

김관우 선수의 메인캐릭터였던 크림슨 바이퍼(왼쪽). 필살기 캔슬 및 하이점프를 메인으로 한 폭넓은 공격 루트가 강력했으며, 필살기 캔슬이 실패하면 빈틈이 크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높은 조작 숙련도를 요구했다.

당시는 풍림꼬마(이충곤), 인생은 잠입(이선우) 등의 플레이어가 유명세를 얻은 시기였습니다. 이런 플레이어와도 대전하셨나요?

오락실에서 직접 마주치는 적은 거의 없었지만, 온라인에서는 종종 만나는 편이었고, 대회에서도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V 발매 후 2009년에 개최된 대회인, 엔스타게임의 투혼 2009에도 참가하였죠.

당시 게임 대회가 그렇게 많은 환경이 아니었기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방송도 된다고 하니 더 흥미가 있었죠. 소위 플스방이라고 하는 곳에서 치러진 예선을 통과하여 16강 방송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추억이 많은 대회죠.

당시 3위를 하셨는데요.

결과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성장이 아직 부족했구나라고 느껴질 정도로 경기가 끝나고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당시 대회는 지금 보편적인 더블 일리미네이션이 아닌 단판 토너먼트여서 꽤 살벌했습니다. 다만 3~4위전에서 승리해 최종 3위가 확정된 부분은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순히 3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스토리가 조금 있었거든요. 그때의 3위는 참 좋았네요.

당시 한일대항전도 진행되었죠.

네. 해당 대회의 1위부터 4위의 선수가, 일본에서 초청되어 온 선수 4명이 대전하는 이벤트였습니다. 다만, 저는 3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대항전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아쉽기는 했지만, 저는 저대로 당시 한국을 찾아왔던 일본 유저들과 안면을 트고 대전도 해서 나름 즐거웠습니다.

이 시기부터 한국 유저들의 해외 대전 격투 게임 대회 참가가 본격화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관우 선수는 언제부터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하셨나요?

스트리트 파이터 IV 시절의 해외 대회는 자발적으로 나가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당시 활약하던 풍림꼬마님이 2011년에 호주에서 진행된 대회에서 우승하고, 다음 해인 2012년에 시드로 초청받아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때 한국 플레이어가 한 명 더 초청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선발전에서 제가 우승하여 풍림꼬마님과 함께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죠. 이게 제가 스트리트 파이터 IV로 처음 해외를 나가게 된 대회입니다.

대회 참여에 대한 갈망이 아직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기였군요.

회사원으로 활동하던 점도 있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사비를 들여서 나갈 정도의 열정은 없었던 것 같네요.

스트리트 파이터 IV는 이후로도 계속 플레이하셨나요?

중간에 좀 쉬기는 했었습니다만,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플레이 자체는 꾸준히 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V

스트리트 파이터 V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스트리트 파이터 IV보다는 조금 더 깔끔한 느낌이랄까. 약간 단순화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해졌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반면 적응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V가 굉장히 스피디한 게임이었으니까요.

맞아요. 특히 제가 하던 C.바이퍼는 굉장히 공격적인 캐릭터였기 때문에, 스트리트 파이터 V 특유의 템포에 적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죠.

캐릭터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발로그(베가)를 사용하셨는데, 캐릭터의 선정 이유는?

제가 사용하던 C.바이퍼가 없어서 어떤 캐릭터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미카를 선택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이걸 메인으로 삼을 일은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발로그를 잡게 되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IV 당시에도 발로그라는 캐릭터는 디자인 면에서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였거든요.

스트리트 파이터 IV에서는 약한 캐릭터였었죠.

그런데 스트리트 파이터 V의 발로그를 해보니 완전히 달라졌더군요. 특히 필살기 커맨드가 모으기 커맨드에서 일반 커맨드로 변경된 것이 컸습니다. 개인적으로 모으기 커맨드를 선호하지 않거든요. 성능도 나쁘지 않았고, 무기를 넣고 빼는 액션도 마음에 들어서 이걸 메인으로 삼아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유저가 많지 않았던 캐릭터였기에, 일본의 프로 플레이어인 네모(네모토 나오키) 선수의 플레이를 참고하며 발로그의 꿈을 키웠습니다.

김관우 선수와 영혼의 단짝이 된 발로그. 일본을 제외한 해외는 베가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다만 철저하게 아케이드는 일본과 해외의 명칭을 구분한 것과 달리, 가정용은 해외에서 일본판을 그대로 수입하는 경우도 존재해 명칭이 깔끔하게 통일되지는 않았다. (최신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6도 국내는 일본판 명칭을 기준으로 표기).

이 시기부터 대회에서 이름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스트리트 파이터 V가 스트리트 파이터 IV 시절보다 대회가 많이 늘어났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캡콤 프로 투어도 진행되고, 세계 각지에서 눈에 띄는 대회가 엄청나게 늘어났죠. 한국에서도 스트리트 파이터 IV에 비해 커뮤니티가 더 왕성해졌고, 국내 대회도 많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참가할 기회도 늘어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로드 투 에보처럼 한국의 플레이어를 해외 대회와 연결해주는 이벤트도 많이 열리게 되었고, 그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해외 대회에 참가할 기회도 늘어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스트리트 파이터 V는 저에게 참 많은 기회를 준 게임 같아요. 마지막에 이렇게 금메달까지 안겨주었으니. 제 인생에서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이런 게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V의 마지막 캡콤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적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는데, 당시를 회고하신다면?

캡콤 컵 IX은 라운드 로빈을 통과했으나 결과적으로 16강에서 떨어졌습니다. 본래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더라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이 남는 대회였습니다. 특히 이번에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다 보니, 그때의 내가 이만큼 연습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두 배로 아쉽더군요.

김관우 선수는 2022 캡콤 프로 투어 월드워리어 대회에서 한국 지역 우승 타이틀을 차지하였으며, 캡콤컵 IX에 참가해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규모도 컸고, 주목도도 높은 대회였으니 더 아쉬우셨겠습니다.

아무래도 캡콤컵이니까요. 그 정도로 큰 대회에 참가한 것은 사실 처음이라서 긴장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 같은 조에 영국의 엔딩 워커라는 닉네임의 선수가 있었습니다. 2006년생으로 최연소 참가자였는데, 반면 김관우 선수는 최연장 참가자였습니다.

말이 많았죠. 아들이네 뭐네. (웃음) 하지만 저는 경쟁상대를 보면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는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냥 게임 플레이어로만 보이거든요. 유치원생이 상대로 나와도 비슷할 겁니다. 저는 유치원생 상대로도 최선을 다합니다. (웃음)

항저우 아시안 게임으로

비슷한 시기에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예선이 있었습니다. 두 번의 예선에서 각 1위만 출전 자격을 얻는 대회에, 첫 번째 예선에는 준우승을, 두 번째 예선에서 우승하셨습니다. 당시 과정이 어떠셨나요? 결과적으로 참가가 결정되었습니다만, 첫 번째 대회에서 준우승했다고 다음에 우승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1차전 끝나고는 ‘이렇게 고생해놓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해보자고 생각해서 2차전에 도전했고 결과적으로 우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잘 되어 출전까지 이어지고 이렇게 메달까지 따게 되었네요.

원래는 선발전 후 바로 대회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의 문제로 대회 자체가 1년 연기되었습니다. 이때 심경은 어떠셨나요?

많이 불안했습니다. 연기가 발표되고… 아 그때 그 선발전이 다 의미가 없게 되는 건가? 대회를 하긴 하는 건가? 아시안 게임이 취소되는 건 아닌가? 종목이 바뀌는 건 아닌가? 다시 선발전을 하는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죠. 그냥 게임을 열심히 플레이하면서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스트리트 파이터 V는 ‘선수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충분히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 재선발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라고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의 개최 일자가 다시 확정되니 이제야 진짜 하기는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합숙 훈련 등도 조금씩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두 번째 선발전에서 국가대표의 자격을 따낸 김관우 선수(왼쪽).

감독 선임이나 대회 분석관 등 본격적인 대회 준비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23년 4~5월 정도였을 겁니다. 이때부터 조금 체계적으로 준비가 시작되었거든요. 중간에 스트리트 파이터 6가 발매되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마음의 준비와 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 것은 아시안 게임의 개최로부터 1개월 정도 전부터였습니다.

1년 동안 기량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심지어 도중에 스트리트 파이터 6까지 발매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신작이니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없었고, 스트리트 파이터 6에 아예 손을 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개인 방송도 하고 있었기에 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특히 당시의 스트리트 파이터 V는 랭크 매치 만으로는 기랑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잘하는 사람은 이미 다 스트리트 파이터 6로 이동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스트리트 파이터 V와 6를 동시에 플레이하고 있다가, 대회 일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집중적으로 연습해야겠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6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들을 일단 차단하고 스트리트 파이터 V에만 집중했습니다.

국가대표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기간에 들어선 이후 참 신기한 기분이었습니다. 대표선수 출정식, 공항에서의 인터뷰, 개회식 참가, 일반적인 e스포츠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으니까요.

국가대표의 자리라는 게 참 놀랍더라고요. 신선한 이벤트의 연속이었습니다. (웃음) 준비 과정도 놀라움이 많았습니다.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게임으로 합숙을 한다는 것 자체부터요. 저희가 알아서 사람을 모아 준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훈련하고, e스포츠 협회,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까지… 국가대표로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플레이어가 이렇게 일반 방송에서 주목받은 적이 있었을까.

감독님의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전 격투 게임의 대회나 중계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장르의 저변을 확대한 팀 스피릿제로(Team SPIRITZERO)의 캐스터로 유명한 강성훈 님이 감독을 담당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정말 많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선수로서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감독님이 정해주신 스케줄에 맞춰 게임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그 게임은 다 연습이고 훈련이기에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라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니지만, 게임 플레이 이외의 거의 모든 것을 감독님이 다 조율해주셨습니다. 스케줄 정리, 협회와의 커뮤니케이션, 제가 잘 모르는 문서 관련 업무까지.

정말 국가대표의 감독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주셨네요.

맞습니다. 선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보내셨을 겁니다. 특히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합숙 훈련에서 스파링 파트너를 모을 때였는데, 이 부분은 정말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감독님이 팀 스피릿제로와 함께 대회를 운영하시면서 정말 많은 선수와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 선수들을 감독님이 일일이 연락하여 필요한 선수를 오프라인 훈련장으로 부르고, 힘들면 온라인으로라도 스파링을 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머더케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잘 알려진 팀 스피릿제로의 강성훈 씨. 다수의 대전 격투 게임 이벤트를 이끈 그 수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국가대표 감독에 적격인 인선이다

이전의 인터뷰를 보면 예전에는 활동했지만, 지금은 활동하지 않은 분들도 아시안 게임을 위해 발 벗고 나서주었다는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NDA가 있어서 밝히기 어렵습니다만, 한동안 대전 격투 게임을 떠난 분이 찾아와서 도와주시기도 했습니다. 특정 캐릭터의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 캐릭터를 프로급으로 플레이하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했더니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찾아와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훈련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다른 선수와 사용 캐릭터의 명단을 정리하고, 그 선수의 기량을 확인한 다음, 이 선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 캐릭터의 한국 내 유저를 모시는 식으로 진행했는데, 국내 최고수 유저를 거의 다 모실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의 대전 격투 게임 커뮤니티가 모두 힘을 합쳤다고 볼 수 있네요. 다른 나라의 소식을 들어보면 이 정도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다른 나라도 국가대표인 만큼 지원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감독님과 제가 준비하면서도 우스개로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우리처럼 준비하는 데가 없을걸?’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6가 발매된 상황이라 환경이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불편하고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한 번 제대로 해보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는 없게 하자��� 생각하며 준비했습니다.

전력분석관은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앞서 말씀드렸던 다른 참가자의 명단을 준비하고, 그 선수의 캐릭터, 기량, 연구, 패턴을 연구해주셨습니다. 분석관이 해당 선수가 사용하는 캐릭터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다면 그대로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셨고, 그 선수와 플레이스타일이 다르다면 그 패턴을 연구하고 재현해서 연습에 동참해주셨습니다.

대회 종료 후에 진행된 다른 매체의 인터뷰를 보면 스포츠 심리상담원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나옵니다. 상당히 인상적이셨던 것 같네요.

대전 격투 게임의 대회에 참가할 때, 물론 개인차는 있겠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대회에서 그날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컨디션은 신체적인 부분도 있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캡콤컵에서 제가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심리적인 ���디션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그 심리적인 부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는 꽤 난제였습니다. 제가 경기 중에 조금 수세에 몰리는 상황, 위기 상황이 되었을 때 마음이 흔들리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본래 해야 할 대처가 불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어떤 상황이 찾아오든 냉정하게 판단하여 과감하게 역전을 시도해보거나, 무모하더라도 새로운 길을 빠르게 모색할 수 있겠죠.

스포츠 심리상담원 선생님은 그것이 가능한 심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경기장은 특수한 환경입니다. 자리가 불편할 수 있죠. 그런 여러 상황에서도 심리 상태,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긴장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실제로 이런 상담을 받아보시니 어떠셨나요? 실력 향상에 있어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느꼈기에 인터뷰마다 자연스럽게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게임 대회에 참가하면서 이런 심리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저희 같은 게이머에게는 꽤 생소한 일이잖아요. 그게 정말 효과가 있어?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 보통이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금방 바뀌었는데, 초기에 진행된 관련 수업을 듣다 보니 그동안 제가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것과 맞물리는 부분이 꽤 많더라고요. 믿을 만하고,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사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e스포츠는 일반적인 스포츠와는 다르다는 편견이 많은데, 이 부분만 보아도 e스포츠라는 장르가 일반 스포츠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담당하신 분도 게이머를 케어하는 것은 처음이셨을 텐데 말이죠.

맞아요. 아시안 게임이 e스포츠 분야에서 정식 종목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한 것도 처음이니까요. 심리상담원 선생님도 본래는 피지컬 스포츠 위주로 활동하시는 분이었지만, 이를 e스포츠에 적용하기 위해 선생님도 따로 연구하셨다고 합니다. 게임을 잘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e스포츠의 시합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를 연구해주셨고, 저희에게 맞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만약 100%의 힘이 필요하다면 선수가 99%가 가져오는 것이고, 저희는 나머지 1%를 채워드리는 역할’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큰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아시안 게임이 작은 대회는 아니잖아요. 국가대표가 참가하여 메달을 걸고 경쟁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대회 중 하나니까요. 그런 큰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정말 편했습니다. 게임 대회에 참가하여 제가 이 정도로 실력을 내면서도 편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게임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츠 심리상담원 선생님과 스포츠 과학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전 격투 게임을 꽤 오래 플레이한 편이지만, 지금까지의 대회도 그렇고 캡콤컵도 그렇고, 연습에 있어 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어떻게 연습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랭크 매치 돌리고, 다른 플레이어의 리플레이 등을 보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반면 이번에 국가대표로서의 훈련은 달랐습니다. 정말 많은 플레이어가 찾아와 훈련을 도와주었고, 저도 그렇게 훈련하면서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을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책임에 대해 너무 부담감을 가지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아, 심리상담원 선생님의 도움도 받아 오히려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더 가볍게, 내가 가진 최대한의 실력을 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 그럼 게임은 자연스럽게 이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이죠.

국가대표라는 무게와 본인의 심리 컨트롤 부분의 노력이 잘 절충되었다고 볼 수 있네요.

맞습니다. 물론 국가대표의 무게는 중요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려면 부담감을 떨쳐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체적인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일반적인 대전 격투 게임 대회는 밤에 하거나 새벽에 하거나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아시안 게임은 첫 경기 시작이 아침 10시 등 이른 시각이 많았습니다. 시합 시간이 달라도 컨디션을 맞추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경기장에 가서 연습했습니다. 신체 컨디션 관리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신체의 리듬을 일정하게 맞춰놓고 항상 상쾌한 컨디션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을 익혀두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가 컨디션 관리하는 것과 다를 게 없군요.

스포츠 심리 상담 말고도 체력 단련이 있었습니다. 군대처럼 철저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몸을 깨울 수 있는 가벼운 운동이나, 게임하면서 올 수 있는 부상을 방지하는 스트레칭이나 근육 운동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것이 몸을 개운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아주 좋았습니다. 스포츠 심리상담원 선생님이나 체력단련연구원은 항저우에도 계셔서 현지에서도 지속적인 상담을 받았습니다.

결승전은 저녁에 있었는데, 경기에 나가기 전에 몸을 깨우고 싶어 단련도 받고 물리 치료도 받았습니다. 목이 좀 뻐근하거나 하면 바로 치료받으러 갔죠. 한 3~4번 받은 것 같네요. 다른 분이 받고 있지 않다면 언제든 가능하기에 미리 시간을 예약해두고 가곤 했습니다. 이게 국가대표의 대우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야말로 전폭적인 지원이네요.

또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 현지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주셨는데, 연습 환경을 의자, 책상, 모니터, PC 사양까지 실제 아시안 게임의 시합에서 사용된 것과 최대한 똑같이 맞춰서 연습할 수 있게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주변 풍경은 좀 다를지언정, 결승의 자리마저 연습한 환경과 거의 똑같았으니까요. 공간도 휴식하기에 너무 쾌적했고, 필요한 건 다 있었습니다. 간식도 많았고, 밀키트 같은 것도 있어서 배고프면 가져다 먹을 수 있었어요.

현지 식사는 어땠나요?

도핑 문제 등도 있어서 밖에 나가서는 먹을 수 없었고, 선수촌 안에 있는 밥만 먹었습니다. 선수촌 밥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음식을 신나게 먹어본 적이 없어요. 단순히 맛있는 것도 있지만, 메뉴가 워낙 방대해서 더 신나더라고요. 과일 같은 것도 너무 맛있습니다. KFC, 피자헛까지 있는데 다 공짜입니다. 그때 KFC는 제가 먹어본 KFC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징크스 같은 건 있나요?

딱히 징크스랄 게 없었어요. 어차피 잘 될 때는 잘 되고 안 될 때는 안 되니까요. 다만 이번에 한 가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보조경기장에서 시합하는 날, 당일 베스트 4 결정전까지 쭉 한 번에 치러지는 중요한 날이었는데, 그때 우연히 주머니에 배지가 하나 들어있었습니다. 근데 그날 무패로 올라가게 되어, ‘혹시 이게 힘이 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배지는 결승전까지 가지고 갔습니다. 경기장 출입을 할 때마다 소지품 검사가 있기에 귀찮은 일이긴 했지만, 그 불편함을 감내하더라도 배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지고 있길 잘했던 것 같네요.

바로 그 배지

이번 경험이 앞으로의 게임 플레이에도 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네. 국가대표로서 했던 경험 거기서 배웠던 점, 느꼈던 점은 앞으로 대회에 참가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평생 남을 저의 자산이네요.

금메달로 가는 여정

현지 중계가 없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맞아요, 저도 아쉬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결과가 기재되는 페이지만 새로 고침하면서 승패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지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김관우 선수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금메달로 가는 여정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 과정에서 쓰러트린 상대입니다. EVO 2022 우승자였던 일본의 카와노(카와노 마사키) 선수, EVO 2022 JAPAN의 우승자였던 대만의 오일킹(린 리웨이) 선수까지, 스트리트 파이터 V로 치러진 마지막 EVO의 우승자 2명을 모두 격파하였습니다. 카와노 선수의 경우는 초반에 붙었는데 어떠셨나요?

많은 분이 카와노 선수와의 경기 결과에 집중하시는 편인데, 저희가 견제했던 선수는 싱가포르의 브랜든(브랜든 치아) 선수였습니다. 스파링 파트너와도 이야기했었는데, 정말 실력이 좋은 선수였습니다. 감독님도 브랜든과의 대결이 위기였다고 보셨습니다. 대회에서 붙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정말 안정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였습니다. 이렇게 플레이할 수 있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정적이면서, 또 기회가 오면 확실하게 캐치하는 선수입니다. 이 부분이 방송에 안 나와서 참 아쉬운데, 서로 1라운드씩 주고받은 상황에서 제가 콤보만 잘 넣으면 이기는 상황이었는데 콤보 선택을 실수하여 상대의 체력이 아주 조금 남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저의 체력은 거의 풀 상태였고요. 그런데 그 상태에서 역전당해 1:1이 되었습니다. 감독님은 이 순간 제 멘탈이 크게 걱정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미 스포츠 과학에 기반한 심리상담을 통해 강철같은 멘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웃음) 결과적으로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관우 선수와 코치진이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싱가포르의 브랜든 치아 선수

그래서 오일킹 선수와의 시합에서 마지막 스턴 콤보에 가면을 벗으셨군요.

네, 그건 그냥 도발이 아니고, 발로그는 가면을 벗으면 공격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후반 스턴 상황에서 이번 콤보로 끝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면을 벗는 일이 많습니다. 나중에 생긴 메타인데 저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발로그의 가면 벗기. 2022년 이후 버전에서 추가된 기술로 공격력이 10% 상승하는 대신 방어력이 10% 떨어진다. 스턴 상황에서 콤보를 넣을 때, 이 공격력 10%로 KO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하다

카와노 선수는 어땠나요?

처음엔 꽤 걱정했습니다. 카와노 선수는 콜린이라는 캐릭터의 장인으로 알려져 있고, 서브로 루크를 가지고 있는데, 카와노가 일본에서 발로그 전을 대비해 발로그의 셋업을 콜린으로 카운터 치는 장면을 X(구 트위터)에다 올렸더라고요. 그래서 콜린을 경계했는데 놀랍게도 루시아로 들어왔습니다. 저를 흔들려는 속셈이었겠지만, 저는 다행히도 게이머비(샹 여우린) 선수의 루시아를 대비해 연습을 해둔 상태였습니다. 물론 상대가 카와노인 만큼 쉬운 시합은 아니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첫 세트 마지막 라운드에서 제가 가드만해도 KO 당하는 상황이었고, 카와노는 게이지가 가득찬 상태였습니다. 이때 카와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되겠다고 판단하여, 공방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려는 순간 전방 대시 2번 후 커맨드 잡기를 넣어 이겼습니다. 대시에서 커맨드 잡기는 프로 시합에서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대부분 칼같이 대시를 캐치하거든요. 그런데 카와노 선수도 생각이 많았는지, 의외의 수에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2:0이었지만, 이 1세트에서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EVO 2022 챔피언인 일본의 카와노 마사키

브랜든 선수와의 대결에서 김관우 선수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김관우 선수가 그대로 이겼네요.

그 친구는 스포츠 심리 상담을 받지 않았나 보죠. (웃음) 실제로 발로그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는 상대였기에 쉬운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오일킹을 만났습니다. 바로 직전 대회 우승자인데 오일킹은 어떠셨나요?

오일킹은 세스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라시드를 꺼내더군요. 대만 쪽도 상대 선수를 연구한 것인지, 저희가 세스를 예상하고 준비할 거라는 것을 이미 알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저희 측 전력분석관의 계정을 스트리트 파이터의 CFN에서 찾아 리플레이나 플레이한 캐릭터를 봤다고 하더군요. 라시드는 집중 연습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강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고, 오일킹의 기습적이고 스피디한 라시드 플레이에 대한 대처는 어느 정도 연구하여 갔습니다. 막상 시합에서는 그런 부분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준비해간 것들이 잘 통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플랜 B로(조금 뒤로 빠지거나, 리버설로 거리를 벌리는 식으로) 싸웠습니다. 흐름은 어려웠지만 결국은 이길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오일킹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대만의 린 리웨이 선수. 계절을 따지지 않은 반바지 패션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금메달 결정전에 미리 올라가서 올라오는 선수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밑에서는 대만의 게이머비 선수와 오일킹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붙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유저는 오일킹이 올라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게이머비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저와 감독님의 예상은 게이머비였습니다. 게이머비가 오일킹보다는 안정적인 승률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였기에 게이머비가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상대하기에도 오일킹보다는 게이머비가 힘들 것이라 생각해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커뮤니티는 대부분 오일킹을 예상하더라고요. 최근 대회에서는 오일킹이 이름을 많이 올라온 것이 사실이지만, 게이머비도 장기적으로 실적을 남긴 노련한 선수니까요. 실제로도 두 사람의 시합은 초반에 오일킹이 밀어붙였지만, 마지막에는 게이머비가 뒤집더군요.

게이머비는 최근에는 운영 등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녹슬지 않았나 보군요.

옆에서 지켜보면 아시안 게임의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표정도 진지하고 플레이도 정말 진지하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요.

공교롭게도 김관우 선수와 게이머비 선수는 1979년생으로 동갑입니다.

그렇죠. 동갑이 이런 큰 대회의 결승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요. 이렇게 결승에 올라오는 저력을 보면, 대만의 영웅이라는 말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룰이 조금 특이했는데, 더블 일리미네이션에도 불구하고 결승은 리셋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패자부활전이 있는 스포츠 대회는 한 번 지면 경우 동메달이 한계였는데, 이 경우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어드밴티지 같은 건 있었나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캐릭터 선택 순서가 정해져 있어 상황에 따라 조금 불공평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습니다만, 저는 캐릭터가 발로그 하나로 고정이라서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편하긴 해요. 카운터픽을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제 캐릭터 골라놓고 ‘들어 와라, 난 캐릭터 맞춰서 V 스킬이나 바꾸련다’. 뭐 이런 느낌이었죠.

게이머비와의 결승 시합은 어땠나요?

걱정이 많았습니다. 대만의 두 선수가 저와 이미 싸워본 상태라, 저에 대해 서로 정보 교환을 하고 연구도 많이 해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이머비 선수는 루시아와 루크를 교차로 플레이하며 저를 흔들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루시아가 많이 나올 것이로 생각해서 대비했습니다. 게임 내용은 막상막하로 진행되었습니다만, 루시아에게는 크게 세트를 내주지 않고, 오히려 루크와의 싸움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대만의 1세대 대전 격투 게임 플레이어 샹 여우린 선수. 스스로의 실력뿐 아니라 대만 내 장르 인지도를 넓히기 위한 그의 다양한 시도가 유의미한 성과를 얻으면서, 현지 대전 격투 게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대만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다행히도 결승은 인터넷 한정이긴 합니다만 중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시합은 중계가 되지 않았죠. 중계가 없었다고 생각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너무 아쉬웠죠. 아무래도 경기를 보면서 응원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고 응원하는 맛도 나는데 말이죠. 그걸 보지 못하시고 결과 올라오는 페이지만 새로 고침하면서… 그래도 그렇게라도 승리를 확인하시고 기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참 고마웠습니다. 그래도 금메달 결정전에 가서 긴급하게 중계가 잡혀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를 승리히고 금메달이 확정되었을 때 심정은?

우승 당시에 마지막에 이기고 끝났다!는 생각보다는, 혹시 진짜 끝난 거 맞나? 카운팅을 잘못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보통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하면, 우승을 확정지은 선수가 손을 치켜들며 포효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김관우 선수도 게이머비 선수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직후에는 이겼다! 기쁘다! 라는 기분이 확 올라오지는 않았고, 진짜 끝났나? 안 끝난 거 아닌가? 의심이 들면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 게이머비가 헤드셋을 벗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고, 그때 처음으로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헤드셋을 벗으면서 일어났는데, 저를 응원해주는 e스포츠 협회 관계자의 함성과 모습이 반대쪽에서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쪽으로 인사하고, 게이머비와 인사하고 그랬죠.

고마웠던 부분은, 메달 세리머니 끝나고 도핑 검사를 받은 다음에 다시 돌아갔을 때 시간이 상당히 늦었는데, 저를 축하해주시려고 많은 분이 남아 계셨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들 피곤하고 바쁘실 텐데 다 기다려주신 것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대회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 거기 다 계셨었거든요.

금메달 확정의 순간

금메달리스트

메달 세리머니로 넘어가죠. 금메달 딴 분들은 많이 받는 질문인데, 금메달 따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대전 격투 게임으로 애국가를 울리게 하셨습니다. 김관우 선수가 한국 e스포츠 부문 최초 공식 금메달리스트니까요.

마음이 경건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자리에서 몸소 체험했습니다. 태어나서 애국가를 그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저희는 보통 그런 장면을 TV에서나 보잖아요. 그 장면을 제가 경기장에서 꽃다발을 들고, 메달을 걸고, 포디움 가운데서 직접 바라보며, 배경에는 애국가가 흘러나오니 기분이 참… 중국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애국가가? 나 때문에?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보는 저희도 감동이었는데 당사자는 어떻겠습니까. 김관우 선수가 올린 태극기이자 애국가입니다.

애국가 1절 동안 올라가는게 그렇게 짧은 편은 아닌데, 그 순간이 정말 짧게 느껴지더라고요. 참 좋았습니다.

금메달리스트로서의 기록을 이야기해보죠. 김관우 선수가 대한민국 아시안 게임 최연장자 금메달리스트입니다.

폐막식 때도 TV에도 나왔어요. 메달리스트가 쭉 나오는데, 김관우 최연장자 메달리스트���고요. (웃음)

그것과 같이 나오는 이야기가 병역 혜택입니다. 이미 20년 전에 전역하고 민방위도 끝난 나이인데.

그러게요. 남는 게 없네요. (웃음)

항저우에는 언제까지 있었나요?

김관우 : 경기 끝나고 바로 다음 날에 돌아왔습니다.

귀국 후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저는 사실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뉴스 인터뷰, 지금처럼 게임 미디어와의 인터뷰 정도는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관심을 주셔서 너무 놀랐습니다. 공중파 라이브 방송이나 라디오. 유퀴즈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초대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매일 놀라고 있습니다. 한동안 정말 바빴어요. 바쁠 때는 하루에 방송국 3개를 돌고는 했죠. 뭐 일종의 반짝 스타니까 10월 지나면 금방 사그라들겠지 했는데, 감사하게도 스케줄이 조금 길어지고 있어 11월에도 어느 정도 스케줄이 잡혀있는 상태입니다.

출연한 방송 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돌싱포맨에서 저를 부르더라고요. 전 결혼도 안 했고 돌싱도 아닌데. (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퀴즈였습니다. 질문 중에 ‘상처받은 말이 있었나?’라는 ��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은 게 처음이라 꽤 기억에 남습니다. 유퀴즈는 방송 시간에 비해 녹화 시간이나 준비가 굉장히 많이 들었는데, 방송을 보니까 너무 잘 만들어져 나와서 좋았습니다. 촬영 중에 사진도 찍어주셨는데 그걸 따로 다 보내주셨어요. 그 사진들이 대충 찍어준 것이 아니라 정말 잘 찍어주어서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금메달 딴 이후에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아직도 방송에서 언급이 되고 있으니 지금도 좋아하고 계세요. 얼마 전에 아침마당에도 나왔는데 그 어떤 방송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도 문자로 방송을 보셨다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유퀴즈에 보니까 고향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더라고요.

아버지 고향이 예산이신데 동네에 어디를 가도 걸려있다고 하더군요.

하나만 걸려있던 게 아니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오히려 아버지 세대에게는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라는 게 크게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지역 주민의 아들이 금메달을 딴 거니, 오히려 먼저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금메달 자체가 직접적으로 큰 부를 가져다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저의 금메달 자체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명예는 평생 남는 거니까요. 뭐 하나는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이제 앞으로의 이야기를 해보죠. 이제 스트리트 파이터 6도 본격적으로 하시겠네요.

스케줄이 바빠서 예전만큼 게임을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6는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아직 실력이 만족스럽게 올라오고 있지 않아 조금 아쉽네요.

발로그도 없는데 캐릭터도 고민이시겠습니다.

캐릭터야 제가 맞추면 되는 거긴 하지만, 아직 게임 시스템에 적응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이런 게임이라 생각하고 맞춰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리트 파이터 V보다 스트리트 파이터 6의 탑 티어 캐릭터를 다른 캐릭터로 상대하는 게 조금 더 어려운 느낌입니다.

다른 관심 있는 게임은 있나요?

해보고 싶은 게임은 많습니다. 대전 격투 게임 뿐만 아니라 게임 전반을 좋아하니까요. 사이버 펑크 2077의 확장팩인 팬텀 리버티도 해보고 싶고, 발더스 게이트 III도 해보고 싶고… 아, 사실 제가 PS5가 없었는데 최근 방송 시청자 한 분이 PS5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PS5 게임들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Update 2023-10-31 20:34] 이 인터뷰가 공개된 후, CDPR은 김관우 선수에게 사이버펑크 2077과 팬텀 리버티를 금메달 획득 축하 메시지와 함께 전달했다.

김관우 선수의 활약을 보고 나도 대전 격투 게임을 해보고 싶다, 아시안 게임에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미래의 꿈나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전 격투 게임은 도전하기까지 필요한 준비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으로 인해, 대전 격투 게임이 많이 알려지고 인식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면 기쁠 따름입니다.

대전 격투 게임은 라이트 유저가 접하기 힘든 장르 중 하나인데, 저변 확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오락실에 들었다가 가볍게 접해보고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면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죠. 온라인으로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최근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6의 배틀 그라운드 같이 게임 내 커뮤니케이션 기능도 충실하므로, 앞으로 나오는 게임도 이런 기능이 많아진다면, 그리고 라이트 유저를 품어줄 수 있는 게임성이 있다면 저변은 다시 확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케이드 스틱을 사용하시는데, 패드나 키보드 등, 다른 주변기기는 써본 적이 있으신가요?

키보드는 써본 적이 없고, 패드나 레버리스 컨트롤러는 잠깐 빌려서 써본 적이 있는데, 저는 아무래도 오래 게임을 해왔다 보니 스틱이 가장 익숙하더라고요. 다만 제가 완전 무의 상태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패드를 쓸 것 같습니다. 운반할 때의 무게도 무시할 수 없거든요. 빠른 커맨드 입력 때문에 레버리스 컨트롤러가 유행하고 있지만, 저는 스틱에는 스틱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스틱을 쓸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는 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국가대표로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둬 기쁩니다. 인기 종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응원과 성원, 관심을 주신 여러분들, 성적을 냈을 때 함께 기뻐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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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 5: 챔피언 에디션

Capcom | 2020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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