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이야기 2: 집밖은 위험해 - 리뷰

단비처럼 촉촉이 스며드는 고양이 드라마

길고양이 이야기 2의 플레이를 마친 후, 나는 자연스레 나의 일상을 뒤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인 입장에서, 게임 플레이를 통해 길고양이의 시선에서 보는 현대인이 가진 일상의 쏠쏠한 즐거움이나 흘러가는 시간 속 여운의 가치를 발견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고 나니, 그동안 일상 속 간과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길고양이 이야기2가 선사하는 고유한 매력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매력은 게임을 즐기는 도중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발견했다. 사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 입장에서는 게임이 주는 노곤한 분위기가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집 밖은 위험해’라는 게임의 부재처럼, 플레이어는 길고양이로 험한 길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시로 허기를 관리해야 하는데, 스토리 감상에 중점을 둔 게임이라고 방심했다가 문자 그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니 허탈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게임 초반에는 주로 쥐 사냥을 통해 허기를 해결하곤 했는데, 허기가 0이 되면 공격도 못 하고 얻어맞다 보니 반드시 식량을 소지할 필요가 있었지만, 제한된 소지품 개수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루 동안 줄 수 있는 선물의 개수에 제한이 있고,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가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 시스템 특성상, 바리바리 보따리상처럼 좋아하는 선물을 최대한 많이 들고 이동하다 보니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소지품 확장을 끝까지 진행하고 나서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개발진이 의도한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플레이 내내 길고양이의 몸을 빌려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색다른 수행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길고양이의 삶에 익숙해지다 보니, 드디어 평소 당연시하던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시나몬, 헤이즐 등 대부분의 등장 캐릭터 이름에서 한국 감성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도트 그래픽으로 구현된 동네는 이상하리만치 일상에서 본 듯 친숙하면서도, 드라마에 나올 법한 요소가 가득하다는 점이다. 플레이어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동료 고양이나 인간 캐릭터도 저마다 루틴대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편의점과 맛있는 빵을 진열해 둔 카페부터 시작해서, 빌딩 층마다 늘어져 있는 학원과 고시원 건너편에는 코인 노래방이 버젓이 서 있다. 설정상 플레이어는 고양이라 사람 말은 못 하지만, 인간이 좋아하는 동전 같은 선물은 가능한데, 호감도가 오를 수록 동네 골목마다 회복 아이템인 고양이밥이 등장하는 등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게임 속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도로에서 친숙하지만, 게임적으로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마을버스나 용달차, 지하철을 구석구석 엿볼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는 익숙할 수도, 이국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일상이다. 이를 고양이의 입장에서 체험하다 보니 그동안 스쳐 지나가던 캐릭터들의 동선에 눈길이 갔다.

게임 내 길고양이로 이동할 수 있는 동네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기에 엿볼 수 있는 일상의 섬세함도 인상적이었다.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서 가게를 여닫거나, 마당의 고양이 밥을 챙겨주러 간다거나, 하교 후 밥을 먹으러 학생들이 식당에 방문하는 등 흘러가는 게임 속 일상을 연출하면서, 게임의 사운드 또한 바뀌는 상황에 발맞춰 생동감을 더한다. 그렇게 서서히 몰입하다 보니 내가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한꺼번에 많은 길고양이들이나 인간 캐릭터를 만나긴 해도 각자의 캐릭터 가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대화를 반복하거나 선물을 주면 호감도가 오르기는 하지만 게임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로서의 의무감으로 한 행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드라마처럼 익숙한 요소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때, 의도치 않은 가출 고양이가 된 천진난만형 주인공, 까칠하지만 속은 다정한 선배 깜식이나 순박한 강아지 친구 순덕이로 개별 캐릭터성을 연결 지어보니 흐릿하게 다가왔던 스토리에 다시금 집중할 수 있었다.

개발진은 인터뷰에서 길거리에 있는 동물이 왜 비하되며 차갑고 적대적인 시선에 직면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인간은 왜 그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해하며 공존의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양방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임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실제로 게임은 이러한 의도대로 인간이나 같은 동료에게 상처받은 여러 고양이 캐릭터를 조명하고, 동물을 학대하거나 그에 맞서는 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여 스토리를 끌어나가긴 한다. 다만 스토리를 감상하면서 이러한 갈등이 충분히 해결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갈증을 느끼는 결과가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로는 개성 넘치는 고양이 캐릭터만큼 스토리를 받쳐줄 매력적인 인간 캐릭터가 없는 점이다. 이는 고양이 주인인 헤이즐의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할수록 분명해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맥 빠지는 삼류 악역 캐릭터는 눈감아 줄 수 있어도, 차라리 사랑꾼이라면 공감했을 법한 애매한 선역 캐릭터의 행보는 게임 스토리에서 겉도는 인간 캐릭터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스토리의 주축이 되는 길고양이 캐릭터와 친해지고, 그들과의 관계에 따라 대화로 암시만 하던 고양이들의 주체적인 개성을 엔딩에서 풀어나가는 걸 경험할 수 있게 구성된 부분은 아쉬운 부분을 달래기에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전반적으로 국내 게이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대로 이색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우리 일상의 단편을 녹아낸 듯한 매력적인 도트 그래픽,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에 숨을 불어넣는 섬세한 사운드로 꾸며진 게임의 무대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길고양이를 중심으로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을 각자의 시점에서 가볍게 다루지만, 매력적인 고양이 캐릭터보다 상대적으로 몰개성한 인간 캐릭터가 아쉽고, 길고양이로 생존하는 과정에서 소지품 개수 제한의 압박이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때때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현대인으로서, 가끔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이 아닌 길고양이의 입장에서 거꾸로 인간의 일상을 체험하며, 여러 개성 넘치는 고양이 캐릭터들의 사연을 듣고 친해지면서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자신의 일상을 뒤돌아보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

평결

우리 일상의 단편을 녹아낸 듯한 매력적인 도트 그래픽,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에 숨을 불어넣는 섬세한 사운드로 꾸며진 게임의 무대가 인상적인 작품. 길고양이의 시각에서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체험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관계를 맺으면서 길고양이와 인간 간의 공존을 다룬 이야기를 가볍게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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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이야기 2: 집밖은 위험해

PPIYO STUDIO | 2023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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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이야기 2: 집밖은 위험해 리뷰

7
Good
길고양이의 삶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시간
길고양이 이야기 2: 집밖은 위험해